사랑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종교가 이야기하고 있고
일반 사람들조차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귀감은 무신론자에게서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신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분의 제자로서
'구분시켜 줄'(요한 13,35 참조)
사랑에 관한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철저한 신학적 사랑으로
애덕이라 불리며 인간과
세상을 위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랑을
당신의 지상 생활을 통해 사셨으며
믿음과 희망으로써 당신에게 달려들었던
사람들을 통해 생활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성삼위적 사랑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으며,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사랑으로서
그의 활동을 특징으로 합니다.
또 모든 다른 사랑에 생기를
불어넣는 사랑으로서 인간 안에
들어 있는 진정한 신적 생명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대리자로 보내신
성령께서는 우리 존재의 한가운데에
신적 생명의 충만함을 가져다 주십니다.
이 신적 생명의 충만함이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역동적 방법까지를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사시면서
우리에게 하신 계시의 특성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15. 34)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사랑하듯
사랑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이
사랑하시듯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방법은
그분 안에 있는 성삼위의 생명입니다.
성삼위적 사랑, 이 사랑은
인간에게 제시된 새로운 형태의
사랑으로서 우리 안에 성삼위께서
계시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 14,23)
- 보이지 않는 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