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동료 수사신부에게 말하기를
"내가 '더 이상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거든,
나를 죽은 사람으로 간주하시오"라고 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9개월의 감옥살이 동안,
"가장 큰 고통은
미사를 드릴 수 없고,
성체를 모실 수 없는 것이었다."
라고 회상하였다.
성인들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장애물이나
어려움도 개의치 않았다.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나폴리의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심한 복통을 느꼈다.
그와 동행하던 수사 한 명이
성인께 걸음을 멈추고
진통제를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날 아직 미사를 드리지 않았던 성인은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나는 미사 성제를 바치기 위해서라면
이 상태에서 10마일 이라도 더 걷겠습니다."
당시에는 영성체 전의 공심재를
자정부터 지켜야 했으므로,
성인은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공심재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는 고통이 좀 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당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언젠가 카푸친회 수사신부였던
성 라우렌시오 브린디시는
이단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지방을
거쳐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가톨릭 교회가 하나도 없으므로,
성인은 성당이 있는 곳까지
40마일(=64킬로미터)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성인은
"저에게 미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
라고 말했다.
- <성체 성사에서 만나는 예수님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