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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 61-죽음 이후의 세계

작성자 운영자(ip:)

작성일 2018-12-13

조회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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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의인은 영원한 생명 누려
 
 「팡세」라는 책으로 한국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파스칼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신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한 심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죽은 다음에 천국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어차피 확률이 1대 1이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확률은 똑같다. 자, 그렇다면 도박을 해 보자. 서로 반대 경우가 사실이라면 결국 손해는 누가 보게 되는 것인가? 천국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세상을 '함부로' '엉망으로' 살았는데 죽어서 보니 하느님도 있고 천국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인가, 아니면 천국이 있다고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하느님도 천국도 없는 경우의 사람인가? 결국 누가 낭패를 맞이하게 되겠는가?"

과연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가? 죽으면 인간 생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인류가 알고 있는 답은 여러 가지다.

첫째, 어떤 이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면 미련 없이 끝이라는 것이다. 소멸된다는 것이다.

둘째, 어떤 이들은 "죽으면 윤회한다"고 믿는다. 죽으면 다음 세상에서 다른 생명체로 환생해서 생명을 존속한다는 것이다. 사람에서 돼지로, 돼지에서 개로, 개에서 선업을 잘 쌓으면 다시 사람으로 돌고 돌다가 수억 겁을 지나서 윤회의 틀을 벗어나 열반(涅槃)에 이른다는 것이다.

셋째, 어떤 이들은 "죽으면 영적 세계(이데아 세계)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죽으면 영혼이 육체의 감옥을 떠나서 영혼의 본래 고향인 이데아의 세계로 귀향한다는 것이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하느님 품으로 가서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 살아온 행실(믿음)에 맞갖은 천국ㆍ연옥ㆍ지옥이라는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과연 어느 답이 맞는 답일까? 사람마다 팽팽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데, 대체로 둘째부터 넷째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보다 진지하고 보람되게 살려고 하는 반면 첫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실컷 즐기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런 사람들을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야 내일이면 죽을 몸 먹고 마십시다"(1코린 15,32).

앞에서 던진 물음들을 본격적으로 파고들 때 만나는 주제가 종말(終末)의 문제이다. '종말'은 마지막 일들, 곧 죽음, 심판, 천국, 지옥 등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단어다. 교회에서 이 종말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크게 두가지로 말한다. 즉 죽음, 부활, 연옥, 영원한 생명과 같은 개인(個人)의 운명과 관련지어 '종말'을 일컫기도 하고, 주님의 날, 세상의 종말, 심판,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관련된 역사(歷史)의 운명과 연관해서 '종말'을 얘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말'에 대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종말'에 대한 신앙이 잘못되면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 외곬 종말론에 빠진 사교(邪敎) 집단들이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파고들어 세력을 넓히면서 집단 자살을 기도하는 등 각종 사회 문제를 가져오기도 했던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인류 종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구약 시대부터 시작돼 지속해 왔다. 특히 '100년' 시간 단위의 끝이나 '1000년' 주기(밀레니엄)의 마감을 앞두고 여지없이 갖가지의 종말론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 '세상 끝'을 단정하는 불길한 예언들도 세기말을 사는 사람들의 여린 의식을 짓누르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확실한가? 우리는 다만 성서의 가르침, 그리고 역사를 거쳐 오면서 검증돼 교의로 확정된 것에 준해 종말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종말에 대한 가르침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언제 올지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32).

개인의 종말이든 인류 역사의 종말이든 종말의 때는 하느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둘째, 기회는 단 한번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히브 9,27).

불교의 윤회론이 다음 세상에서 여러번 삶이 약속돼 있는 것에 반해서, 그리스도교의 종말은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 '단 한번' 주어지는 소중한 기회이다.

셋째, 미리 징조(=전조)가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진통의 시작일 따름이다"(마태 24,5-8).

기상 이변, 전쟁, 거짓 예언자들의 득세뿐만 아니라 인간 지식의 발달로 인한 생명 파괴, 인간의 타락 등으로 인한 자연적ㆍ사회적 혼란의 징조를 보고 종말을 예감할 수 있다. 신앙인들은 이런 징조를 보고 대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넷째, 종국에는 악마가 영원히 제압된다는 사실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13,49-50).  

종말에 악의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가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은 현재의 고난, 실패, 역경, 패배를 극복하는 큰 힘이 된다.

다섯째, 의인, 악인으로 갈려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마태 25,31-33).

심판은 단죄가 아니라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질서가 완성되는 과정을 말한다. 그때에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곧 의인이 제자리를 찾고 제 몫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성서는 특히 의인들의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마태 13,43).

종말에 있을 일에 대해서 이 이상의 것을 말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성서가 명백히 전해 주는 이외의 것을 구체적으로 날짜와 방법까지 알려고 하는 이도, 또 안다고 가르치는 이도 모두 '유혹하는 자'의 미끼에 넘어갈 위험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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