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 -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
곧 왕정이 확립되는 시기를 다룹니다.
판관 제도에서 왕정 제도로 옮아가는 시기를 다루는 사무엘기 상권에는
왕정 제도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소개됩니다.
유사시에만 등장하는 판관들을 통한 다스림은 이민족들의
침입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왕정에 대한 현실적인 필요를 긍정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임금이신데 하느님이 아닌
인간을 임금으로 세울 수 없다는 입장도 있습니다.(1사무 8장 참조)
사무엘은 임금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마지못해 수락하면서
왕정의 성공 여부는 백성들이 얼마나 하느님께 충실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합니다.(1사무 12,24-25 참조)
사무엘기 상권의 주요 등장인물은 엘리와 사무엘, 사울과 다윗입니다.
역사가는 엘리와 사무엘, 사울과 다윗의 운명을 대조적으로 그려 보임으로써
하느님의 선택과 그 선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훌륭하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그 선택에 따라오는 충실성을 요구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지만 하느님께 온전히 충실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의 왕위는 다윗에게로 옮겨 갑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는 과정은 ‘왕위등극 사화’(1사무 16-2사무 5)라는
이름이 붙은 긴 이야기를 통해 묘사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다윗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상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냅니다.
사무엘기 하권은 이스라엘을 통일하여 하나의 국가로 확립한
다윗의 왕위가 솔로몬에게 계승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여기에는 밧 세바 사건과 다윗의 맏아들 암논이 타마르를 강간한 사건,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고, 그 후 아버지인 다윗을 거슬러 반역을 꾀한 일 등
다윗 왕가의 어두운 이야기들이 소개됩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잇는 이야기, 곧 ‘왕위 계승 사화’(2사무 9-20; 1열왕 1-2)는
당시의 정치적 특권층들이 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왜 역사가는 이스라엘 역사의 이런 어두운 면들을 감추려 하지 않았을까요? 사
무엘기 하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했던 선택은,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역사는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추어 줍니다.
다윗의 왕조에 대한 나탄의 예언을 보도하는 2사무 7장은
‘왕위등극 사화’와 ‘왕위계승 사화’ 사이에 자리합니다. 자
신의 왕궁을 짓고 나서 주님이 계실 성전을 짓고자 하는
다윗에게 나탄 예언자는 “성전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다윗 왕조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실 것”이라는 신탁을 전해줍니다.
그 무엇도 하느님의 선택을 담보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유에 달린 것이지만 이 신탁으로 인하여 다윗의 왕위는
그의 아들에게 물려집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시킬 메시아가 다윗 집안에서 나오게 되리라는
기대는 바로 이 예언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