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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를 배우다 (20)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권고합니다

작성자 운영자(ip:)

작성일 2022-09-14

조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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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기도를 배우다 (20)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1-2).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12). 

 

 

문맥 보기

 

지난달에 중재자로서 바오로의 모습(9-11장 참조)을 통해 중재 기도가 그의 사도 직분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인간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 계획에 맡겨 드리면서 아름다운 찬미가로 9-11장을 마무리한다(11,33-36 참조). 

12,1-2은 권고 항목인 12-15장의 내용을 포괄하는 주제 구절이다. 12,1에 나오는 접속사 ‘그러므로’는 

로마서의 논리 전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오로가 1-11장에서 제시한 가르침을 토대로 

12-15장에서 로마 신자들에게 공동체에서 실천해야 할 사항을 권고하기 때문이다.

 

12,1-2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삶을 얻게 된 사람들은 영적 제사와 변화된 삶으로 

신앙을 세상에 증언하라고 권고한다. 이어서 12,1-2의 정신을 기초로 12,3-21에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8장 참조)의 구체적 특징을 보여 주는 사항들을 권고한다. 이 단락 가운데에 위치한 12,12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희망하며 고통 가운데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자세가 기도에서 흘러나온다고 가르친다.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권고합니다

 

바오로는 12,1에서 로마서에서는 처음으로 동사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의 1인칭 단수형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내가 권고합니다(παρακαλῶ οὖν…).”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는 

‘다른 사람에게 외치다’ 또는 ‘어떤 사람을 자기 옆으로 부르다’는 의미이다. ‘기도하다, 요청하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 이 동사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109번 나오는데, 바오로 서간에서만 54번 나오므로 

바오로가 즐겨 쓰는 동사라고 할 수 있다. 바오로 서간의 권고 항목은 종종 파라칼레오 동사로 시작된다

(로마 12,1; 2코린 10,1; 1테살 4,1; 필리 4,2; 에페 4,1 참조). 

바오로는 이 동사를 ‘권고하다’는 원칙적 의미 외에도 ‘위로하다’, ‘계속해서 탄원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권고는 ‘명령’과 다르다. 바오로는 공동체와 관계를 맺을 때 힘과 권위를 사용했지만, 

그것으로 공동체를 지배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바오로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낳은 

영적 아들과 딸인 신자들을 격려할 줄 알았고, 자신을 그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로 여겼다(2코린 1,24 참조). 

바오로의 이런 자세는 그가 신자들에게 지시할 때도 ‘권고하다’는 동사를 자주 사용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명령할 수 있을 때’에도 먼저 ‘호소하는’ 방식을 택하여 신자들의 ‘자발성’에 우선권을 두었다. 

참된 배움은 배운 것을 스스로 내면화하여 다른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파라칼레오를 사용하여 신자들에게 권고할 때 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나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함께 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2,1에서는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디아 톤 오이크티르몬 투 테우 διὰ τῶν οἰκτιρμῶν τοῦ θεου)”라는 표현과 함께 권고한다.

 

바오로의 사도적 권고의 배경은 구약의 하느님이다. 구약성경에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십니다”(시편 86,15)는 표현이 27번 가량 나온다. 

이스라엘은 이런 요소들을 하느님의 특성으로 여겼고, 이는 경건한 이스라엘인이 바치는 기도의 일부가 되었다.

 

바오로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

”(2코린 5,21)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로마 5,8)신 것으로 가장 잘 드러난다. 

바오로의 삶 자체가 하느님 자비의 선포이자 하느님 자비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드러낸다. 

바오로에게 “당신의 하느님 체험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라고 질문한다면,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맛본 체험”이라고만 말할 것이다.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공동체를 위한 탄원 기도가 바탕이 된 이 권고에서 바오로는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 정신에 따라 

영적 예배로 바치라고 요구한다. 복음 선포의 궁극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로마 15,16 참조)이다. 

복음 선포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변형된 삶을 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 선포는 구약의 가장 완전한 제사인 번제와 비교할 수 있다. 

번제에서 희생 제물은 불로 살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하느님께 도달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12,1)라는 말은, 

복음 때문에 완전히 변형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로 드리는 예배를 염두에 둔 말이다.

 

산 제물에서 ‘산(ζῶσαν, living)’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아 갖게 된 ‘새로운 삶’(6,4)과 연결된다. 

‘새로운 삶’의 의미는 6,13ㄴ에서 끌어 낼 수 있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세례는 인간을 죄에서 분리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며,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게 한다.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기 몸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드러낸다. 

사도의 삶이 갖는 궁극 목적은 그리스도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2코린 4,10-12 참조). 

이런 영적 예배는 오로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바칠 수 있다. 성령 안에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변화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12,2) 이끌어 준다.

 

12,1-2의 권고에서 바오로는 이방인과 유다인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로 봉헌하는 중재자의 모습을 보인다. 

바오로의 복음 선포는 직접 수행하는 예배, 또는 희생 제사의 기능을 하는 거룩한 행위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선함, 성령의 사랑을 토대로 로마 신자들에게 영적 예배를 바치라고 권고한다.

 바오로는 권고할 때 주관적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권고한다. 

이런 권고는 하느님 앞에서 항상 신자들을 기억하는 바오로의 기도 습관에서 흘러나온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살면서 당신이 좋은 신자가 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권고합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희망과 인내는 기도에서 흘러나온다

 

12,12에서 바오로는 세 가지를 권고하는데 이는 서로 연결된다. 첫째, “희망 속에서 기뻐하십시오.” 

기쁨은 무척 힘든 현재의 처지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종말론적 희망 속에서 누리는 감정이다.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을 때 성령께서는 미풍 같은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도록 이끄시며 

다시 용감하게 걸어갈 힘을 주신다. 둘째, “환난 속에서 인내하십시오.” 이 표현에는 바오로가 

체험한 고통의 가치가 스며들어 있다.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인내하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마지막 권고는 앞선 두 권고의 영적 배경을 이룬다.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기도는 자녀들의 

청원을 기쁘게 들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도록 신앙을 성장시킨다.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고아로 살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같다. 

누가 과연 신앙 공동체에서 참된 권위를 가지고 신자들에게 권고할 수 있는가? 

기도하면서 희망하고 인내한 사람! 바오로처럼 기도하는 사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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